엄마 전화가 아주아주 시끄럽게 울렸다.
왜 알잖아, 엄마들 전화 벨소리 음량 최대치인거
저장되어있지 않은 날것의 번호였다. 010-어쩌구 저쩌구.
갤럭시의 훌륭한 기능 덕에 이전에 그 번호로 문자 왔던 내용도 짧게 요약하여 통화화면에 보였다.
"니 왜 전화를 안받노 부산에 이종섭이다"라고 적혀있는 문자내용이었다.
"엄마, 이종섭 누군데? 전화왔다"
"으이휴, 줘봐, 거절해. 이거 전화번호 차단시켜 땡보새끼"
"누군데? 이종섭?"
전화를 받아들고 거절 버튼을 시원하게 슬라이드하며 땡보 중에 땡보새끼라고 욕을 하는 엄마가 너무 웃겼다.
갑자기 친구처럼 느껴졌다.
왜 친구끼리 거지같은 남자친구나, 남자 사람 친구, 또는 친구마저도 아닌 어쩌다가 알게 된 남자 사람이랑 있었던 일화 이야기하면서 욕하는거 알잖아. 그런 느낌?
엄마 핸드폰을 들고 통화기록에 들어가서 차단을 시키는 도중에도 두번이나 부산의 땡보 이종섭씨에게 전화가 왔다.
사실 엄마가 혼자 된 이상 나는 엄마의 연애를 열렬히 응원하는 입장이다.
연애가 아니더라도 그냥 가볍게 친구라도 만난다하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마치 내가 낳은 딸래미가 처음으로 유치원에 가서 쿵짝이 잘 맞는 친구를 사귀고는 하원시간에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장면을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엄마를 애 취급 하는건 아니고, 그만큼 기분이 벅차고 좋다는 뜻이다.
아무튼 이런 내 입장에서는 이종섭이라는 부산의 땡보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땡보? 왜 땡보인데?"
"돈 안써서 땡보야, 저번에 보자해서 동생들도 볼겸 겸사겸사 부산까지 가서 봐줬더만, 커피숍가서 커피 한 잔 안사는거있지? 커피도 비쌌어, 커피 주문하는데 가만히 쳐다보고있는거라, 나 참 어이가없어서. 부산까지 갔는데 지가 사야하는거아니야? 인간적으로?"
이때다 싶었는지 엄마는 부산의 땡보 욕을 쉬지않고 랩하듯이 딕션좋게 뱉었다.
"지하고 내가 만날 급이야? 웃기는 새끼 왜 자꾸 전화하고 지랄이야, 얼른 차단시켜"
찰지게 욕하는 그 찰나의 순간, 생생하고, 활기차고, 아련하고, 아릿하고, 친구같은 엄마의 모습이 정말 좋았다.
말 그대로 재밌었다.
오랜만에 옛날 동네 친구를 만나러 가는 엄마의 그 마음을 감히 상상해본다.
설레는 마음으로 만난 동네친구가 돈 안쓰는 부산의 땡보였다.ㅋㅋㅋ
그 실망스럽고 짜증나는 마음에 쉽게 공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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